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국정 의제로 떠오른 ‘국민총행복’ ‘행복’을 국정이나 정책 의제로 삼는 것은 자칫 ‘뜬구름 잡기’라는 도마 위에 오르기 쉽다. 행복은 누구나 얘기하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추상명사인 데다 측정기준도 천차만별이어서다. 그래선지 오랫동안 선진국들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의외의 복병으로 히말라야산맥 속에 자리잡은 인구 70여만명의 작은 왕국 부탄이 있었다. 꼭 50년 전인 1972년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은 ‘국민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는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경제’를 국정 목표로 삼았다. 그는 후생지표를 ‘국민총행복’이라고 이름 지었다. 국민총행복지수(GNH)는 총체적인 행복과 후생수준을 평가하는 9가지 요소로 이뤄졌다. 심리적 안정, 건강, 시간 활용, 행정체계, 문화 다양성, 교육, 공동체 활력, 환경, 생.. 더보기
공수처 1년, 넘치는 의욕 민망한 실력 1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더없이 흐뭇해했다. 필생의 숙원이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첫발을 내디뎠을 때였다. 문 대통령은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공정하고 부패없는 사회로 이끄는 견인차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 중요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공수처장도 화답했다. “인권친화적 수사기구가 되는데 초석을 놓아 국민 신뢰를 받는다면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도 변화할 것이다.” 1년 후 공수처는 "이러려고 공수처 만들었나"하는 비판에 직면했다. 검찰개혁의 핵심 치적이라던 공수처가 어쩌다 존재이유를 찾기 어려운 애물이 됐나 싶다. 탁월한 수사능력, 정치적 중립, 인권친화적 수사는 공수처가 갖춰야 할 3박자다. 공수처 1년 성적은 세가지 모두 과락 .. 더보기
죽음이 낳는 정치적 숙제 ‘죽을 때는 괴테처럼.’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가장 행복하고 편안한 죽음을 맞았다. 1832년 3월 22일 오후 1시 반쯤, 여든세살이던 괴테는 바이마르에 있는 저택 집필실에서 글을 쓰다가 피곤을 느꼈다. 그러자 지팡이를 짚고선 집필실 옆 작은 침실의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오른손으로 허공에다 W자를 그렸다. 곧이어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괴테의 만년 비서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요한 페터 에커만은 괴테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남겼다. ‘평안한 기색이 고귀한 얼굴 전면에 깊이 어려 있었다. 시원한 그 이마는 여전히 사색에 잠긴 듯했다.’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 사마천은 죽음에도 무게가 있다고 했다. ‘태산 같은 무게의 죽음이 있는가 하면 기러기 깃털의 무게밖에 안되.. 더보기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수 없다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재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단연 눈길을 끈 인물은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총무정무위원(장관)이었다. 성 소수자인 탕 장관(40)은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의 아이콘이자 대만 디지털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차이잉원 총통 대신 참석한 탕 장관은 화상으로 110개국과 대만의 모범적인 디지털 플랫폼 민주주의 경험을 나눴다. 대만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167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해 발표하는 2020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11위(전년 31위), 아시아 1위에 올랐다. 대만 민주주의의 약진은 탕 장관 덕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차이잉원 총통은 2016년 정치 경력은 물론 공직 분야 경험도 전혀 없는 35세 ‘화이트 해커’ 출신 .. 더보기
‘표준’이 돈·권력·무기인 시대 역사는 표준화 과정이자 표준 쟁탈전이기도 하다. 표준을 만들고 확립하는 자가 권력과 돈을 거머쥐었다. 권력자들은 자연스레 표준에 집착했다. 이제 누구나 표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표준은 심지어 무의식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표준은 자의적이든 강제적이든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진 통일 규격을 의미한다. 표준을 통해 치수·용어·사물·서비스·관행에 이르기까지 의미와 결실이 한결 명료해진다. 모든 나라의 표준어는 국가의 지배와 권력체계를 상징한다. 한국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다. 경제와 과학기술 역시 표준을 거쳐 발전한다. 근대화의 핵심에 표준화가 있었던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특징인 대량생산체제는 표준화가 낳은 결실이다. 중국.. 더보기
로마 황제 자리도 돈으로 샀다지만 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돈으로 샀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19대 로마황제 자리는 오늘날 유권자에 해당하는 1만명의 근위대 병사에게 줄 돈을 더 많이 써낸 후보가 차지한 일이 일어났다. 2세기 무렵 온갖 특권과 돈으로 근위대의 충성을 유지했던 황제들 때문에 근위대는 더없이 부패했다. 세습제가 아닌 로마제국에선 황위에 오른 뒤 근위대에 즉위 하사금을 주는 게 관례였다. 서기 193년 18대 황제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를 시해한 황실 근위대는 다음 황제 자리 경매 공고문을 벽에 붙였다. 그러자 두 후보가 나섰다. 전임 황제 페르티낙스의 장인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와 전직 집정관이자 부유한 원로원 의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였다. 승자는 근위병 1명당 7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6250데나리우스(3억원 상당.. 더보기
대장동 의혹,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 정책 결정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를 낳는 최악의 상황이다. 선인들이 밟은 전철(前轍)은 무수하다. 미국의 세입자 보호를 위한 아파트 임대료 통제 정책, 베트남 하노이의 들쥐꼬리 현상금 같은 게 대표적 일화다.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좋은 의도로 도입한 정책은 아파트 주인이 아파트 유지 보수에 투자하지 않는 등 외려 세입자에게 해로운 결과를 쏟아냈다. 하수구 들쥐를 박멸하기 위한 들쥐꼬리 현상금은 쥐꼬리만 자르고 놓아주는 부작용을 불러왔다. 새끼를 낳아야만 꼬리를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란 경구로 정립돼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서양 속담까지 생겼을까 싶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정책.. 더보기
중국 견제 고삐 쥔 앵글로스피어 미국은 식민지 시절 영국에 이긴 뒤 독립하는 과정부터 어쩐지 수상했다. 파리에서 열린 평화회의에서 영국이 미국에 많이 양보할 각오를 굳히자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프랑스가 먼저 놀랐다. 영국이 줄곧 궁지에 몰렸던 사실은 누가 봐도 뻔했다. 어느 순간부터 극적인 관계 역전의 소문이 나돌았다. 영국이 미국 주권을 인정한 후 두 나라가 연합해 그동안 미국 독립을 위해 영국과 싸웠던 프랑스와 스페인을 공격해 북아메리카에서 완전히 추방한다는 얘기였다. 1782년 11월 30일 평화조약 서명 후 파리의 뉴욕호텔에서 열린 축하파티에서 있었던 영국 대표 캘브 화이트포드와 프랑스인 초청객의 대화가 흥미로운 일화로 전해온다. 이 프랑스인은 미국의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연합한 13개 주는 훗날 세계 최대.. 더보기
높은 사람일수록 비리·거짓말 많다면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양심적이고 도덕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면 더 나은 사회로 진화할 개연성이 높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실험과 연구 결과는 이를 배반한다.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 사회심리학 연구팀이 직업, 소득, 재산, 교육 수준 같은 지표로 모집단을 나눠 실험한 결과, 상위 계층일수록 비윤리적인 행위를 더 많이 한다. 이 연구팀의 다양한 실험에서 자신이 상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여러 사회 행위 속에서 절도, 속임수, 거짓말, 뇌물공여 등을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비율은 하위 계층의 3~4배나 높다. 도로·사거리의 실험에서 불법 추월이나 끼어들기 같은 난폭·얌체 행위를 하는 운전자는 대부분 값비싼 고급 차량 소유자였다. 어린이들에게 줄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탕이 가득 담긴 항아.. 더보기
인구지진에도 미래세대에 빚더미 물려주는 양심불량 뭘 하든 세계최고 기록을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에 ‘인구절벽’에다 ‘인구지진’까지 덮쳤다. 지난해 한국의 출생률이 0.84로 세계최저치를 경신했다. 세계 유일의 출생률 0명대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절벽’과 ‘인구지진’이란 말은 자극적 용어를 즐기는 한국 언론이 지어낸 게 아니다.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은 미국 경제학자 해리 덴트가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급속히 줄어드는 현상에 붙인 개념이다. 인구절벽이 생기면 생산과 소비가 함께 줄어들고 경제활동이 급속히 위축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 ‘인구지진’(Agequake)은 영국 인구학자 폴 월리스가 고령사회의 충격을 지진(Earthquake)에 빗대어 만든 용어다. 인구 구성 자체가 바뀌어 사회구조를 뿌리째 흔드는 충격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