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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주목경제 시대의 숨은 공로자들 이보다 더 모질고 악독한 말을 하기도 어렵다.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창원시의회 의원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 자식들이 날 때부터 국가에 징병되었나요?? 다 큰 자식들이 놀러 가는 것을 부모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깁니까?! 언제부터 자유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버이 수령님’이 되었나요??" 망언의 끝판 대장을 보는 듯하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성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물러난 바로 그 사람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은 공식회의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지난 .. 더보기
체리피킹 정치의 유혹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고 위대한 지도자로 우뚝 선 데에는 통계의 비결이 숨어있다. 당시만 해도 통계·조사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정책이 주먹구구식이었다.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한꺼번에 쏟아지는 실업자가 100만명인지, 1000만명인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다. 실업자수는 심지어 2500만명까지 추정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미국 연방의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를 정부에 권고했다. 미국 인구가 1억3000만명이나 돼 전수조사를 하더라도 빅데이터를 집계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통계학자들이 24.9%라는 실업률을 근접하게 알아낸 방법은 표본조사였다. 통계학자들은 임의로 뽑은 전체인구의 0.5%를 대상으로 조사하고 분석했다. 세계 .. 더보기
허슬 컬쳐, 조용한 사직, 주52시간제 개편 김민재 한국 국가대표 축구선수는 민첩한 허슬 플레이(hustle play)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에게 ‘괴물 수비수’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재빠른 뒷공간 커버와 허슬 플레이 덕분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 선수도 경기 흐름을 바꾸는 허슬 플레이로 감독에게 "다른 선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선수"라는 극찬을 받는다. 스포츠의 허슬 플레이가 일터에서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허슬 컬쳐’로 변주된다. 개인 생활보다 회사 업무를 중시하고 열심히 일하는 생활양식과 이를 높이 사는 문화다. 이는 한국에서도 50대 이후 세대의 성공한 직장인들에게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일벌레’나 ‘워커홀릭’(일중독)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전형이 그것이다. 허슬 컬쳐는 원래 현.. 더보기
‘선택적 정직’이 낳는 지도자의 위기 네덜란드 국민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은 남달리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캔버스에 그린 것만 50~60점, 종이 판화 데생까지 더하면 100여점에 달한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숫자나 작품성보다 정직성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자화상의 교과서’로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실 그의 외모는 잘생긴 게 아니다. 렘브란트가 20대 때 그린 ‘황금 고리줄을 두른 자화상’에는 젊음의 패기와 자신감이 넘쳐난다. 이와 달리 말년의 자화상들은 초라한 노인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모든 것을 잃고 희망마저 포기한 듯한 얼굴은 안쓰럽다. 한 미술평론가는 렘브란트가 쉰네 살 때 그린 ‘이젤 앞에서의 자화상’을 보고 ‘무자비할 정도로 너무나 무정한 기록’이라고 평했다. ‘예술은 거짓이다’라고 했던 철.. 더보기
‘미래’ 간판 걸고 ‘과거’ 상품 파는 새 정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금언은 예수가 처음 한 말이어서 한결 무게가 실린다. 이 잠언에는 과학이 담겼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를 양의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았다. 이때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오래 담아 두면 발효과정에서 독한 가스가 생겨나 부대가 터져버린다. 오래된 가죽부대 안에 당분이 묻어 가죽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새 가죽부대는 포도주가 발효하는 만큼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 ‘새 부대’는 흔히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 인물과 정신을 상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나라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도 "나라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청년들과 함께 만든다는 각오로 소통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약속과.. 더보기
‘빅블러’와 ‘붉은 여왕’을 동시에 보는 시대 빵집 파리바게뜨에서는 ‘정통 자장면’을 가정간편식으로 판다. 세계 최대 커피체인 스타벅스에는 은행보다 많은 돈이 예치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업종과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포식한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는 임파서블 버거(식물성 버거)가 출품됐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포털 빅테크기업은 금융업에 손을 뻗쳤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빅블러’(경계융화)를 촉매한다. 미국 미래학자 스탠 데이비스와 크리스토퍼 메이어는 ‘블러: 연결경제에서의 변화 속도’라는 공저(1999년)에서 혁신적인 기술발전에 따라 기존의 경계가 무너.. 더보기
빈곤은 가난과 다르다 한 작가는 빈곤과 가난의 차이를 흥미롭게 풀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면 빈곤, 끼니만 해결되면 가난이란다. 프랑스 시인이자 철학자인 샤를 페기는 빈곤과 가난이 이웃임이 틀림없지만 서로 다른 땅에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빈곤과 가난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과 빈곤한 사람은 현상적인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빈곤은 모든 게 비참으로 가득 찬 경계 내부를 전적으로 지배하지만, 가난은 그 너머에서 시작해 일찍 끝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빈곤과 가난의 경계를 이해하면 수많은 경제적·도덕적·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쉽게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가난은 선택할 수 있으나 빈곤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한다. 영국 사회학자 피터 타운센드는 빈곤을 ‘사회참여 불능’으로 정의한다. 아시.. 더보기
맥베스의 운명, 윤석열의 길 윤석열 대통령이 권좌에 오르는 과정은 공교롭게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 전반부를 연상시킨다.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이자 충신인 맥베스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길에 정체불명의 세 마녀와 마주친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장차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언한다. 깜짝 놀란 맥베스는 들은 얘기를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맥베스는 전공을 세운 자신에게 영주 작위까지 하사한 던컨 왕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주저한다. 야심만만한 아내는 남편의 나약함을 타박하며 왕을 살해하라고 부추긴다. 용기를 낸 맥베스는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자기 성에 들어와 잠자던 던컨 왕을 시해한 뒤 왕위에 오른다. ‘맥베스’는 실존 인물인 스코틀랜드 국왕 ‘막 베하드 막 핀들라크’가 모델이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더보기
최고·최악이 혼재하는 디킨스적 현상 영미권에서는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가 혼재할 때 ‘디킨스적 현상’(Dickensian quality)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미국 투자전문 주간지 배런스가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2019년 상반기를 평가하면서 ‘디킨스적 현상을 겪었다.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였다’고 형용했다. ‘디킨스적 현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불리는 디킨스의 작품 세계를 표징하는 말이다. 자기 이름이 그가 살던 시대와 작품으로 표현한 시대의 형용사로 쓰이는 영예를 누리는 작가는 드물다. 영국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쌍벽을 이루는 찰스 디킨스는 그런 작가이자 지식인이다. 디킨스가 살던 시절,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며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이었지만 그곳에도 가난에 신음하는 서민과 온기 없는 그늘이 많았다... 더보기
‘초심자 행운’이 가혹한 시험으로 처음 주식에 손을 대 재미를 좀 보면 빚까지 내 골몰하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이 숱하다. 친구를 따라가 처음 낚시를 하는 사람이 한두차례 월척을 낚으면 자기 소질이 대단한 줄 안다. 새로운 걸 처음 해볼 때 뜻밖에 전문가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는 ‘초심자의 행운’은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초심자의 행운’을 맞이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초심자의 행운’에 자기과신과 확증편향까지 결합하면 최악의 실패를 불러온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초심자의 행운’을 경계해야 하는 본보기로 곧잘 거론한다. ‘초심자의 행운’을 자신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어김없이 시련이 따라오곤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루 코엘류는 소설 ‘연금술사’에서 ‘무엇인가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