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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진보 보수 4명의 총리와 일한 영국 최고 관료 헤이우드와 한덕수 총리 정파를 초월해 오랫동안 모범적인 고위 공직자로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을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독일통일의 주역 가운데 한사람인 겐셔는 18년 동안 한자리에서 일해 ‘직업이 외무장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총리로 이어지는 세차례의 정권교체와 통일 직후에도 최장수 ‘외교 사령탑’은 바뀌지 않았다. ‘외교의 귀신’이란 별명까지 붙은 그는 ‘겐셔리즘’이라는 외교용어를 낳을 만큼 탁월한 역량을 체현했다. 겐셔리즘이란 외교정책과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파악해 패권과 영향력 행사 지역으로 세계를 분할하는 것을 막고 다극체제 속에서 공존하자는 취지다. 겐셔는 미국 소련 등 주변 4대 강국과 인접 9개국 어느 쪽도 적으로 만들지.. 더보기
선진국에 걸맞아야 할 공직 인사기준 헝가리 대통령은 박사논문 표절 탓에 물러났다. 슈미트 팔 전 대통령은 올림픽 펜싱 금메달 2연패를 이룬 헝가리의 스포츠 영웅이었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이보다 한달 앞서 독일 국방부장관도 박사논문 표절 의혹으로 사임했다. 독일에서는 2년 뒤 교육부장관이 또 박사학위 논문 표절 판정을 받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에는 독일 가정·노인·여성·청소년부장관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소용돌이 속에서 사직했다. 스웨덴 부총리는 정부 신용카드로 생필품 34만원어치를 사고 나중에 자기 돈으로 카드대금을 메꾸었다고 해명했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모나 살린 부총리는 공휴일에 기저귀 초콜릿 식료품값을 무심코 법인카드로 지급했다. 1996년 총리직 승계를 반년 앞둔 시점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아무리 작은.. 더보기
못 말리는 검찰 사랑 인사 한국 최고지도자 중 외국 기자로부터 국내 인사(人事) 문제점을 지적받은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같은 지적도 한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로부터 남성 편중 내각 인사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외국 정상과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할 때 대부분 미국 대통령에게만 질문을 던진다. 어쩌다 상대국가 지도자에게 질문하더라도 외교 현안에 집중된다. 윤 대통령은 최근 미국 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도 남성 편중 내각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두차례 답변에서 윤 대통령의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예를 들어 내각의 장관이라고 하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다.” “첫 내각을 구성하는.. 더보기
문제는 정파적 온정주의다 더불어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것이 내로남불과 오만 무능 때문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기 어렵다. 조 국·윤미향 사태로 표징되는 ‘내로남불’은 온정주의와 정파·진영의 결합이 낳은 적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실에 걸렸던 액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 조롱의 대상이 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다. ‘남에게는 부드럽게, 자신에겐 엄격하게’라는 뜻이지만, 문 전 대통령과 정권 사람들은 그 반대였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온정주의로 대했다. 20대 여성인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단어가 ‘온정주의 타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최강욱 의원 성희롱 발언, 박완주 의원 성비위 사건, 김원이 의원 성폭력 2차가해 의혹 등 잇단 물의로 곤혹스러워.. 더보기
‘그들만의 리그’ 특권고위층 인사청문회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됐다. 거울에 비치는 고위층의 맨얼굴은 날이 갈수록 추한 모습만 드러낸 돋을새김 같다. 정권이 바뀌어도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그들만의 리그’는 온존한 생명력을 뽐낸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절망하다 체념하는 분위기까지 엿보인다. 도덕성 기준이 뚜렷이 퇴보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이 연이어 낙마한 결정적인 사유는 위장전입이었다. 노무현정부의 교육부장관 조기 사퇴는 논문 중복 제출 때문이었다. 이제 병역의혹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연구부정 같은 일은 웬만하면 그러려니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지지율은 정권교체당해 떠나는 대통령보다 낮다. 공정과 상식의 깃발 덕분에 당선했으면서 취임도 하기 전에 약속을 깨트린 게 주된 이유의 .. 더보기
100년 전과 꼭 닮은 음울한 지구촌 꼭 100년 전인 1922년 하버드대 두 동창생의 기념비적인 시와 저작이 나와 세상의 눈길을 끌었다. T.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와 월터 리프먼의 ‘여론’이 그것이다. 시대상황을 대변하는 두 작품 모두 지금 현실에 대입해도 맞아떨어진다. ‘황무지’의 유명한 첫 구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100년이 지난 우리에게 그대로 다가와있다. 황무지는 1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1차세계대전과 곧이어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팬데믹이 초래한 서구 문명의 절망을 은유적으로 절규한다. 3년 차에 접어든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지구촌을 100년 전과 다름없는 황무지로 이끌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팬데믹에 전쟁까지 겹친 지금 "중세가 다시 도래.. 더보기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정치 ‘괴로운 사람은 편안하게, 편안한 사람은 괴롭게’(Comfort the afflicted and afflict the comfortable). 미국 언론계의 유명한 격률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말 시카고의 언론인이자 유머작가인 핀리 피터 던(1867~1936)이 가상인물 ‘미스터 둘리’의 이름을 빌려 ‘신문의 임무’를 이렇게 규정했다. 이 말은 언론계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실천적 잠언으로 여긴다. 기자·가톨릭 여성운동가였던 도로시 데이(1897~1980)는 이 말을 평생 실천에 옮긴 것으로 명성이 높다. 노트르담대학교는 데이에게 레테르 훈장을 수여하면서 "일생 동안 괴로운 사람은 편안하게 해주고 편안한 사람은 괴롭게 했다"라고 칭송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 잠언을 철학으로 삼는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더보기
유라시아주의와 대서양주의의 충돌 재편 전쟁은 곧잘 시대전환을 불러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예외가 아니다. 벌써 탈냉전 이후 30년간 지속했던 세계화 시대가 막을 내린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분열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규모 경제블록화가 세계화를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을 담고 있다. 뚜렷한 변화는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에 맞서는 대서양주의의 부활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서양주의는 북미와 유럽이 정치·경제·안보 문제를 통합해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법치와 같은 공통가치를 지키는 정치철학이자 전략이다. 대서양주의의 핵심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있다. 소련 해체 이후 대서양주의는 느슨해졌다. 유럽 국가들의 미국 의존도가 낮아지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런 유럽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 더보기
‘21세기 차르’ 푸틴의 야욕·오만·오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환상은 소련의 부활이다. ‘21세기의 차르’ 푸틴은 소련 영토 일부만이라도 영향권에 두거나 사실상 되찾고 싶은 야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침공도 그런 야욕에서 비롯됐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탈군사화·탈나치화하려는 목적일 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댄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의 무력화와 우크라이나 현 정권 축출을 의미한다. 닷새 만에 거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낸 조지아 침공, 크름(크림) 반도 강제 병합 등으로 야금야금 재미를 본 푸틴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그러자 푸틴이 ‘오만 증후군’(hubris syndrome)에 빠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늦어도 일주일 정도면 우크라이나 전역을 장악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축출하겠다던 푸틴의 계획은 2주일이 가까워져 오지만 .. 더보기
MZ세대 플렉스 문화 열풍의 명암 오늘 나 플렉스해버렸지 뭐야.‘ ’용돈 모아 플렉스!‘ 2030 MZ세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플렉스‘란 말이 홍수를 이룬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영앤리치(젊은 부자)의 플렉스‘ ’하루에 1500만원 다 썼습니다‘ 같은 글이 명품 사진·영상과 더불어 심심찮게 올라온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플렉스(flex)가 명품과 돈 쓰는 것을 자랑하는 의미로 쓰인다. 플렉스는 영어로 ’구부리다‘라는 뜻이지만 1990년대 미국 힙합문화에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원래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자신의 삶을 자랑할 때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염따, 기리보이 같은 MZ세대 래퍼들이 노랫말에 자주 사용하면서 유행에 이르렀다. 최근 설 연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