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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4강의 공세적 외교 1999-01-13 지난 세기말 이후 한반도 사람들은 어느 한해, 어느 순간에도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네 나라를 일컫는 「주변 4강」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적이 없다. 새로운 세기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올해라고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4강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살피고 따져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까닭은 자명해진다. 수난과 치욕의 역사가 웅변해 주고 있음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이들 4강국이 아직 올해 대외정책을 구체적으로 천명한 것은 아니지만 특징적인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공세적 외교」가 아닐까 싶다. 강대국의 속성이 공격적이게 마련이긴 하다. 그렇지만 탈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을 제외하면 이들 나라가 경제적 측면에서든 국가안보적 측면에서든 방어개념.. 더보기
<데스크 칼럼> 유럽의 부활 1998-12-18 ”90년대 초반 세계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도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던 순간에도 미국 MIT대의 석학 레스터 서로 교수는 21세기를 유럽이 주도할 것이라고 우기다시피했다. 그는 특히 미국, 일본, 유럽의 경제전쟁에서 승산은 유럽에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서로는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아시아 대륙으로 옮겨 간다는 이른바 「문명서진설(文明西進說)」을 단호히 배격했다. 그는 「세계경제전쟁」이라는 명저를 펴낸 직후인 92년 10월 기자와 인터뷰할 때도 아시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여러 각도에서 진단하면서 특유의 탁견을 펼쳐 보였다. 유럽의 경제적 통합에 대한 회의론이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을 당시 그가 유럽의 저력을 그처럼 높이 산 데는 나름대.. 더보기
<데스크 칼럼> 金 대통령의 ‘독일 벤치마킹’ 1998-11-25 특정분야에서 우수한 상대를 목표로 삼아 뒤떨어지는 부분을 개선하는 「벤치마킹전략」이 얼마전까지만해도 지구촌에 유행처럼 번졌다. 주로 기업같은 조직에 먹혀들었던 이 전략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다소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국가경영이나 정치에서도 이 전략이 원용되곤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가장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싶어하는 나라는 독일이 아닌가 싶다. 김대통령이 모방하려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우선 독일식 정당비례대표제다. 지역감정을 없애는데 안성맞춤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있지만 국민회의가 불모지인 영남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국민의 정부」가 성공사례의 하나로 꼽는 「노·사·정 .. 더보기
<데스크 칼럼> 일본의 숙제 1998-10-14 일본이 숨기고 싶어하는 치부(恥部)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일본 정부가 가장 먼저 손 댄 일의 하나가 미군을 위한 국가공인의 매춘조직과 시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항복 방송이 있은지 불과 3일만인 45년 8월18일. 일본 경시청은 화류(花柳)업계 대표들을 불러 진주군을 위한 위안시설 마련에 관해 협조를 요청한다. 일본 정부는 이날중 내무성 경보국장 이름으로 각 부·현에 「진주군 특수위안시설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무전을 보낸다. 곧 이어 8월28일에는 화류계 업자들에 의한 「특수위안시설협회」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국고보조금을 받아 대대적으로 미군 위안부를 모집한다. 「전후 처리의 국가적 긴급시설, 신 일본여성을 구한다」는 신문광고는 .. 더보기
<데스크 칼럼> 자본주의와 지도층의 위기 1998-09-16 날씨마저 제정신을 잃어버린 요즘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가치관의 처연한 일탈(逸脫)장면을 참담한 가슴으로 체험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입에 담기도 거북스런 세계 최강국 지도자의 성추문과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은 우리네 아버지의 비정한 모습이 그것이다. 두 사건은 가장 원초적 욕망인 성(性)과 돈의 노예가 된 인간의 벌거벗은 원형을 더없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둘은 동·서양 덕목의 동반타락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을 표상하는 근대적 시대정신인 청교도 윤리와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이자 신앙인 유교정신의 몰락을 의미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두 사건은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자본주의의 위기」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공통점을 지녔다. 청교도정신은 .. 더보기
<데스크 칼럼> 犬公과 국회의원 1998-08-05 유권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때론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있는 조그만 읍인 「수놀」의 주민들은 지난 83년 견공(犬公)을 읍장으로 뽑았다. 사람 읍장에 오죽 넌덜머리가 났으면 그랬을까. 요즘 우리 정치인들을 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신을 위해(危害)하지 않는 한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개의 품성에서 암시를 얻은 유권자들이 1회성 시위 정도로 시작했다가 무려 여섯차례나 연임시켰다. 읍장으로 선출된 보스코 보스 라모스란 이름의 이 사냥개가 유권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없이 충직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4년 전인 지난 94년 천수(天壽)를 다할 때까지 11년간이나 자신의 임무에 일로매진(一路邁進)했다. 비록 인구가 1,000여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더보기
<데스크 칼럼> 日 국민의 냉엄한 심판 1998-07-15 한나라의 포괄적 건강상태를 단숨에 읽어내는 수단으로 증권시장을 능가하는 것이 없지 않을까 싶다. 정치·경제적 민심 감지에는 더욱 그렇다. 한결같이 경제적 위기에 시달리는 아시아국가들의 경우 외환시장을 추가하면 그만일 듯하다.엊그제 끝난 일본 참의원 선거결과에 대한 일본 국민의 생각도 주가와 엔화에 거의 그대로 투영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자민당의 참패 직후 주가가 떨어지기는커녕 반등세를 나타냈다. 엔화 역시 초기엔 약세를 면치 못하다 회복세로 돌아섰고 하루가 지난 뒤엔 좀 더 강세로 접어들었다. 하루 이틀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기 어려운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국은 단기적으로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총리의 사임 발표가 국민에게 기대.. 더보기
<데스크 칼럼> 낯 간지러운 ‘정보化’ 1998-04-22 앨버트 고어 미국 부통령 부자의 선각(先覺)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우연의 일치부터 우선 이채롭다. 그 성격은 다르지만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온존하는 데 한몫을 하는 「고속도로」와 공교로운 인연을 맺고 있다. 고어 부통령의 아버지인 앨버트 고어 1세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약하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고속도로망을 구축하는 일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자동차도로가 광대무변한 국토를 사통팔달하는 고속도로망으로 거듭난 것은 앨 고어 1세의 선견지명 덕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1956년 제정된 미국의 「고속도로법」은 대부분 그의 남다른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선지 고어 부통령은 미국이 지난 93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최첨단 「정보초고속도로」 건설을 .. 더보기
<데스크 칼럼. 1인자와 2인자 1998-04-08 역사에 길이 남는 건국엔 으레 걸출한 지도자와 그에 버금가는 1등공신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 가운데 모범생으로 일컬어지는 싱가포르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간관계는 리콴유 초대총리와 고갱쉬 전제1부총리다. 두 지도자의 관계는 찾기 힘들 만큼 특이하다. 그들은 함께 손을 맞잡고 나라를 일으켜세운 주역이면서도 인간적인 친근함은 나눠갖지 못했다. 1인자와 2인자 사이였던 두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부인 콰걱추를 제외하고는 리콴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었던 사람은 고갱쉬가 사실상 유일했다. 고갱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리콴유의 정책결정에 도전하거나 수정을 강요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리콴유는 화를 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고갱쉬의 .. 더보기
<정동칼럼> YS와 후버 1998-02-28 김대중 새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닮은 점이 많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허버트 후버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미국의 31대 대통령이자 루스벨트의 바로 전임자인 후버는 「실패한 대통령」의 상징처럼 돼 있다. 그는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경제를 임기 시작 7개월만에 파국으로 몰아넣어 세계역사상 가장 먼저 대통령제를 도입한 미국에서 무능지도자의 표본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가 현직에서 물러날 때 미국의 경제사정은 거의 정지된 상태였다. 현재의 한국 경제사정보다 더 나빴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 역사가들은 후버를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비난 또한 가장 많이 받으며 퇴장한 대통령으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취임 초기 90%대의 인기를 유지했던 김 전 대통령이 퇴임 무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