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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 진퇴의 미학 1997-06-21 정치인은 이따금 배우에 비견되곤 한다. 양쪽 모두 연기를 필요로 하는 데다 인기를 먹고 사는 공통점을 지닌 속성 때문일 게다. 퇴장이 멋져야 명배우로 갈채를 얻듯 정치인도 끝맺음이 산뜻해야 평가받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지 오래다. 우리네 선인들은 안분과 더불어 「시중」을 공직 윤리와 처신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시중은 나가야 할 때 나가고 물러가야 할 때 물러감을 일컫는다. 사실 나가는 것보다 물러날 때를 가리는 게 사뭇 어렵다. 오죽했으면 시경에까지 「시작을 잘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경종을 울려 놨을까. 수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이 법언을 익히 들어오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현실로 닥치면 여간해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정치란 마약과 같아 한번 발.. 더보기
[여적] 폴 포트의 투항 1997-06-20 캄보디아를 얘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 「킬링 필드」를 맨먼저 떠올린다. 크메르 루주에 의해 적화된 1975년, 수천명의 시체들이 널브러진 살육장을 목도하고 붙잡혔다가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 디스 프란. 먼저 빠져나간 동료 뉴욕 타임스지 기자 시드니 센버그와 그가 재회의 기쁨으로 힘차게 포옹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존 레넌의 「생각하세요」는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킬링 필드」는 그곳에서 3년간 억류됐다가 탈출한 디스 프란이 쓴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데다 그의 역을 맡은 행 느고르도 캄보디아 억류생활끝에 탈출한 경험이 있어 영화의 생동감을 더해준다.「킬링 필드」의 악명높은 실제 주인공은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인 것이나 다름없다. 월남 패망직.. 더보기
[여적] 국군 포로의 비극 1997-06-13 전쟁만큼 걸작을 낳는 문학적 소재도 드물게다. 최인훈을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평가받게 했던 「광장」 역시 6·25전쟁이 아니었으면 가능했을까 싶다.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때문에 시달림을 당하다 북으로 올라가 그곳 정치체제에 가담해 보지만 북의 「광장」, 남의 「밀실」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전쟁포로가 되어 제3국행을 택하지만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게 소설의 줄거리다. 이렇듯 전쟁과 포로는 바늘과 실에 비유될 만큼 숙명적인 관계다. 극적인 장면이라면 6년6개월동안 공산 베트남의 포로수용소에서 전기고문 등 엄청난 가혹행위를 당한 적이 있는 미 공군조종사 더글러스 피터슨이 베트남주재 미국대사로 부임한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지난달 9일의 일이다.인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