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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아침을 열며...> 인재할당제의 거울 中國科擧

2004-03-03
최근 정부가 제시한 지방인재 채용목표제에 위헌론과 역차별론을 들이대며 반대하는 이들은 중국의 과거제도 역사를 보면 한번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사법고시니 행정.외무.기술고시니 하는 것들도 모두 따지고 보면 중국 과거제도가 그 원조이기 때문이다.과거제도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인재의 지역분배 논쟁이 치열했다. 당나라 때 안사(安史)의 난 이후 중국의 북방은 치명타를 입어 경제.문화가 남방에 비해 날이 갈수록 낙후된 탓이다. 오늘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벌어져 지역균형발전문제가 심각한 사회현안으로 떠오른 우리 현실과 흡사하다.

송나라 때 저명한 학자인 사마광(司馬光)과 구양수(歐陽脩)의 대논쟁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예화의 하나다. 사마광은 '축로취사'(逐路取士)라는 건의문에서 각 지역의 호구 수에 따라 진사선발 인원을 배분하자고 역설했다. 사마광은 북방 사인들을 대변한 것이었다.

그러자 구양수는 남방 사인들 편에 서서 극력 반대하고 나섰다. 구양수의 논리는 이랬다. "동남지역은 원래 문학을 좋아해서 진사가 많은 반면 서북지역은 풍속 자체가 실질적인 것을 숭상해서 진사가 적을 뿐이다. 과거에선 오직 문장만으로 우열을 가려야지 지역에 따라 정원을 할당하는 것은 미봉책이다." 당시에는 구양수의 주장이 기득권층의 세를 얻어 사마광의 건의는 기각되고 말았다.

司馬光과 歐陽脩의 논쟁
하지만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명나라 초기에 이르러서는 지역의 호구수에 따라 선발정원을 배분하는 남북 분권(分卷)제도가 정식으로 시행되기에 이른다. 1425년부터 채택된 이 인재지역할당제는 최종선발 때 남방과 북방 출신을 각각 6대 4의 비율로 뽑는 것을 뼈대로 삼는다. 분권제는 훗날 남.북방에다 중부권으로 나누는 3권역제도로 거듭나 청나라 초까지 300년 가까이 지속됐다.

요즘 중국지식인들도 인재선발에 관한 한 구양수가 아닌 사마광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조선조 과거시험 때 문과에 한해 지역할당제를 도입한 경험이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현 정부가 내놓은 지방인재 채용목표제는 중국의 과거제도에 비하면 그리 큰 논란거리도 아닌 셈이다. 2007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는 이 제도는 행정.외무고시 등의 경우 지방대생 비율이 20%에 못미치면 미달한 비율만큼 추가인원을 합격시킨다는 게 골자다. 지난해 서울지역 대학 출신의 합격률이 85.6%인 반면 지방대 출신은 14.4%로 돼 있어 목표와는 5.6%포인트의 격차에 불과하다.

지방대 출신 학생들의 경쟁력이 현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한 것은 정부의 대학입시정책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큰 무리가 아니다. 1981년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대학입시가 학력고사제도로 바뀐 이후 전국 대학을 온전히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물꼬가 트인 것이다. 그 전까지는 각종 고시합격자 수효가 전국 5위 안에 드는 대학이 있을 만큼 지방대 상위권 학생들의 실력은 만만찮았다. 현재 행정부의 주요직책에 포진한 지방대 출신인사들의 숫자가 이를 실증하고 있기도 하다.

인재 지역할당제 논란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으나 끝내 실천하지 못한 분야다. 내용도 국민의 정부가 공약했던 것보다 후퇴했다. 총선을 앞두고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는 시점 논란만 빼면 위헌론에다 역차별론까지 제기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인 듯하다. 이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어서 총선용으로도 그리 참신하거나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위헌.역차별론은 우려인듯
기득권층과 일부 언론이 앞장서고 있는 반대 주장에는 상징적인 조치에 불과한 이 제도 하나로 지방대학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겠느냐는 논지도 담겨 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요구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오죽하면 이런 고육지책이라도 써야 할 형편인지 심각하게 따져 봐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법언이 이 경우에 제격이다. 사실 지방대학들의 요구사항은 이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경쟁력있는 지방대학을 살리는 정부의 종합대책과 자구 노력은 너무나 당연한 필요조건이다. 복합적인 효과와 더불어 경쟁력이 조금이라도 살아난다면 이 제도는 자연사하고 말 것이다.

김학순 본사 미디어전략연구소장